소유하지 않아도 주인이 되는 길
구자행 2010/09/15 1237
NAVI199.gif

소유하지 않아도 주인이 되는 길

                                                                   

 벌써 주말부부생활을 한지도 오랜시간이 흘렀다. 어떤 친구들은 주말부부의 고달픔을 잘 모르는지 꽤 낭만적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여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면만을 보고 부러워할 일은 못된다. 무엇보다도 가족들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일상생활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생활의 공간이 달라짐에 따라 가족구성원사이에 정서상의 괴리가 생겨 예기치 않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부부에 대한 항간의 속설은 남편이 가족구성원이 아닌 손님으로 대접받으면서 불화는 시작된다고 한다. 참으로 일리 있는 말인 것 같다. 왜냐하면 손님은 손님일 뿐이기 때문이다. 손님은 그 집안의 대소사를 알 리가 없으며, 손님이 떠나면 집안의 설거지는 주인의 몫인 것이다. 그러니 손님은 한두 번 올 때 반갑지, 자주 찾아오면 성가신 법이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번 오는 남편 또는 아버지가 나머지 가족들의 일상사에 동화되지 못하고 손님이 되어 나타난다면 모두가 힘들어 진다. 아내는 주말마다 남편의 시중드는 일이 번거롭다고 생각되어 질 것이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점차 서먹해질 것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객지에 나가서 가족들을 위해서 고생하고 있는 자신이 점차 가족들에게 성가신 존재로 전락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 그 배신감과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불편해지고, 집으로 내려가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다 결국은 갈등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로서는 이 말이 남의 말로 들릴 수는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묘수를 찾으려고 애쓰지만,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가족들에게 달려가 생활의 공감대를 유지하기 위한 꺼리(영화, 등산, 맥주한잔, 집안일 함께하기 등)를 만들어 주인의 위치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뿐이다. 물론, 나의 이런 노력이 가족들의 100% 만족으로 이어질 리는 만무하다. 나 역시 4~50대 한국 남성의 보수적 성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천성이 살갑지 못한 탓으로 아내의 불만을 사기가 일쑤다. 오죽하면 묻는 말조차 대답을 시원시원하게 하지 않는다고 소죽은 귀신이냐며 수시로 힐난을 받으며 산다.

 

 가족들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 노릇을 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듯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인 노릇은 군림이 아니라 책임과 역할이 따르기 때문이다. 일터와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온 아내와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나의 손님이기를 원할 때가 있다. 그런 그들에게 집주인으로서 손님접대를 잘하는 것이 여간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서로의 피곤함을 내세워 모두가 주인노릇을 포기하고, 저마다 손님임을 내세운다면 그야말로 집안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어 풍비박산이 될 수가 있다. 주인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은 비극을 예고한다. 방치, 무질서, 딴 생각, 독점을 위한 쟁탈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 아수라장에 무슨 평화와 자기성찰, 공존의 지혜가 있겠는가. 가정이나 사회나 잘되려면 주인들이 있어야 한다.

 

 “먼 친척보다도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혈연에 따른 의무적인 사랑과 관심보다도, 일상을 공유하면서 희노애락을 함께한 이웃들의 정이 훨씬 두텁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 하고, 작은 일이라도 함께 도울 때만이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생겨난다. 또 그래야만이 큰일이 생겨도 모두가 주인이 되어 자기 일처럼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자원봉사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없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쉬운 일을 뜻하거나 상대를 다소 비아냥거릴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자원봉사활동과 결합될 때에는 다소 의미가 달라진다. ‘누구나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라는 말에는 사람에 대한 자기긍정이 담겨있다. 시간, 지식, 금전, 재능 중에서 어떤 것이든 , 누구든지 타인에게 서비스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원봉사활동은 자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을 거쳐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능적인 측면이나 사회적 역할 상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기주도적인 삶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똑같은 일이라도 자기 것으로 받아 들이냐 아니면 성가신 것으로 생각하느냐의 수용태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자원봉사활동은 지역과 세상을 주인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접근하고 실천하는 이념이며 행동양식이다. 예를 들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정원의 주인은 큰 정원을 소유한 부자가 아니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지리산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지리산의 주인임을 자처하기에 지리산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많이 알며,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줍고, 나뭇가지 하나라도 소중히 여긴다. 문화봉사자는 지역 문화재의 보호와 홍보를 위해서 주인처럼 행동하고,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방과 후 교육활동을 하는 봉사자는 아이들의 이모와 삼촌이 되고, 태풍피해를 복구하기 위하여 호남으로 달려간 영남의 재난구호자원봉사자들은 어느새 호남 사람들의 이웃이 된다.

 

 이게 자원봉사의 묘한 매력이며 힘이다. 자원봉사활동에서 얻는 기쁨과 감동, 낯선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깨달아가는 공존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자원봉사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소유하지 않아도 주인노릇을 하는 방법, 작은 일이라도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길을 찾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주인의식을 가지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희망’이다.

우리모두 변화의 주인이 되자